[2편] 경찰서 7군데를 돌며 깨달은 것들 : 피의자가 된 피해자의 조사 대응법

보이스피싱 피해를 인지하고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집 근처 경찰서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제 계좌를 통해 돈을 보낸 피해자들이 전국 각지에 있었기에, 저는 서울부터 저 멀리 지방까지 총 7군데의 경찰서를 돌며 조사를 받아야 했습니다. 1억 3천만 원을 잃은 슬픔을 추스를 새도 없이, 수사관의 날카로운 질문에 답해야 했던 그 처절한 기록을 남깁니다.

1. "몰랐다"는 말은 무기가 되지 못했습니다

첫 조사 때 제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저는 정말 몰랐습니다"였습니다. 하지만 수사관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시키는 대로 모르는 돈을 받아서 보냈는데, 그게 이상하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안 했나요?"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은 보통 '고액 알바'나 '채권 회수 업무'라고 속이며 접근합니다. 법리적으로는 이를 **'미필적 고의'**라고 부릅니다. '이게 범죄일 수도 있겠다'는 의심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저는 그 '의심할 수 없었던 상황'을 증명해야만 했습니다.

2. 수사관이 반복해서 던진 '가장 힘들었던 질문'

7군데의 경찰서를 다니며 공통으로 받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왜 의심하지 않았나요?" 그리고 "수수료를 받기로 했나요?"

범죄 조직인 줄 몰랐다는 것을 입증하려면, 제가 그들에게 받은 '지시 내용'이 얼마나 정교했는지를 보여줘야 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보내준 가짜 검찰 공문, 금융감독원 명함, 그리고 하루 종일 저를 감시하듯 이어졌던 통화 기록을 모두 제출했습니다. 특히 제가 그들로부터 단 1원의 수수료도 받지 않았고, 오히려 제 돈 1억 3천만 원이 묶여있어 그들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음을 강조했습니다.

3. 피의자 신분 조사 시 반드시 챙겨야 할 3가지

경찰서 7군데를 돌며 제가 몸소 배운, 억울한 자금전달책을 위한 실전 대응법입니다.

  1. 모든 대화 기록(카톡, 문자)을 복구하세요: 삭제된 기록이 있다면 사설 포렌식을 해서라도 찾아야 합니다. "협박당했다"거나 "속았다"는 증거는 오직 그 안에만 있습니다.

  2. 당황해서 거짓말하지 마세요: 앞뒤가 안 맞는 진술은 수사관에게 '범죄 은폐'로 비칩니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 기억 안 나는 건 안 난다고 정직하게 말하는 것이 오히려 신뢰를 줍니다.

  3. 피해자임을 동시에 입증하세요: 제가 낸 고소장과 피해 입증 자료를 매 조사 때마다 지참했습니다. 나는 이 사건의 '가담자'가 아니라 '가장 큰 피해자'임을 수사관의 뇌리에 박아넣어야 합니다.

[글을 마치며: 7군데의 조사가 끝나고 남은 것]

전국을 돌며 조사를 마쳤을 때, 제 손에 남은 건 수백 장의 조서와 텅 빈 통장, 그리고 깊은 우울증뿐이었습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내가 범죄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만 다시 일어설 수 있었으니까요.

다음 편에서는 범인 중 한 명이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갔던 법정에서의 이야기, 그리고 500만 원 합의금 뒤에 숨겨진 7천만 원 손해의 진실을 다뤄보겠습니다.


핵심 요약

  • 보이스피싱 자금전달책으로 몰렸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미필적 고의가 없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 경찰 조사 전, 조직원과 나눈 모든 대화 내용과 지시 사항을 시간순으로 정리해두어야 진술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

  • 억울하게 연루되었다면 본인도 피해자임을 입증하는 고소장 및 피해 금액 산출 내역을 반드시 지참하자.

다음 편 예고

  • 3편에서는 "범인이 잡혔다"는 연락을 받고 마주한 뜻밖의 인물, 그리고 억울한 합의 과정에서 겪은 심리적 고통을 기록합니다.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가장 억울했던 수사관의 한마디가 있으셨나요? 댓글로 남겨주시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최선인지 함께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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